예엣날 학부시절 서양근대문학 과제... 오랜만에 봤는데 그냥 스스로 좋아서.

학부 시절이 정말 옛날이구나. 그 시절 여자친구는 결혼을 하고 나는 짤없이 30대 아저씨가 되고.


그녀에 대한 스케치

영화 목록을 보고 별 망설임 없이 이 영화를 골랐다. 가장 최근 영화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보다 만 영화였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와 딱 반쯤 보고서 중간에 끊고, ‘다음에 만날 때 뒷부분 보자!’라고 한 다음 여자친구가 다다음 날 미안 너무 궁금해서 봐 버렸어.’라고 해서 그냥 언젠가 봐야지, 라고만 하고 보지 못한 채 어느새 2년이 지난. 그래서 목록을 보자마자 아 맞아, 이거 봐야지하고 골라 놨었다.

결심과 실천의 두 달 정도의 거리 사이에서 3년간의 연애가 끝났다. 그래도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니까, 다른 영화들이 엄청 끌리는 것도 아니고. 재생버튼을 누른다. 가물가물하지만 금방 기억나는 앞의 절반의 이야기들. 그때는 웃으면서 봤었는데 지금은 한 번에 보기 힘들어서 자꾸 멈추게 되는. 40. 난 이미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모두 느꼈고, 앞으로 느낄 건 그것의 더 작아진 반복일 뿐이라는 시어도어의 한탄. 거기서 13분 만에, 사만다로 인해 다시 한 번 삶의 감정들을 느끼며 행복한 시어도어는 말한다. “난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마저 잊고 살았는데 말이지.” 정말? 전에 느낀 것의 작은 반복이 아닌, 온전히 새롭게 차오르는 애정과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찰스는 묵언수행을 하겠다고 떠나 빡빡이가 된다. 문뜩 개츠비의 대사,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158) 밀어버린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무성히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사는 일은 머리카락마냥 죽 밀어버릴 수도, 시간이 지난다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없다. 심지어 머리카락조차도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 20대의 황금 같은 시간일 뿐일 것이다. 대학생활의 절반이었던 관계가 끝나면서, 다시 한 번 그런 감정의 스파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적당히 호감 가서 술이나 먹자고 불러내고 하하호호 하다가 팔짱 좀 끼고 키스 좀 할 수도 있고 한 그런 관계 말고, 에피고넨이 아닌 메시아, 쨍 하고 내리치는 한 방의 번개. 하지만 현실은 긴 연애가 끝나며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서 그런 시작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잃어버린, 마음이라는 게 머리카락 같은 거라면 밀려 버렸는데 탈모가 온 것 같은, 그런 느낌. 찰스의 밀어버린 머리는 다시 날 수 있을까. 다시 나더라도 의미가 있을까? 머리까지 밀며 변화를 천명했어도 묵언의 6개월이 지난 8년을 압도하는 걸 바라는 것은 밀어버린 머리카락이 완전히 새롭게 자라나금발이 흑발이라도 되고 곱슬머리가 생머리라도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 에이미의 옆에 찰스가 있을 수 없었듯.

이사벨라. 사만다는 육체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육체를 갈망한다. 그렇지만 육신은 장애물이기도 하다. 이사벨라는 사만다의 이야기를 통해 둘의 순수한 관계를 동경해 정신(?)과 육신의 가교로 자원하지만, 그 내면에는 욕망이 있다. “나는 그저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당신 둘의 사랑은 너무 순수하니까...”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빛·시간조차도 질량이 있으면 왜곡된다. 하물며 인간의 마음, 관계 따위가 버틸 수 있을까. 시어도어는 이사벨라라는 질량을 넘지 못한다. 사만다는 절망한다. 사만다에게는 육신의 부재라는 너무나도 근본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투리 복선 하나. 사만다는 시어도어와만 대화하는 게 아니다.

알파고 이후 유행하던 말이 있다. “특이점이... 온다...” 영화의 장르는 엄연히 SF. 사만다는 단순히 똑똑하고 마음을 잘 알아주는 AI를 넘어 인간의 사고 너머의 경지로 나아간다. 인간이 강아지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연애할 수는 없듯 사만다는 더 이상 시어도어와 연애할 수 없다. 이사벨라와의 관계에서 한계가 되었던 육신의 부재는 타티아나 커플과의 대화에서 가능성으로 포착되고, 종국에는 초월의 계기가 된다. 시어도어의 육신이야말로 둘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 영혼의 감옥이 된 것이다. 이런 슬픈 역전.

Her, 처음 나왔을 때부터 화제가 많이 되었던 영화다. 당시 인터넷에는 결국 육신의 한계“ ”인간에게 잘 해라같은 류의 감상들이 넘쳤다. 글쎄, 너무 유치한 유기체-이기주의 아닌가. 그냥, 떠나간 사람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마음. 이 정도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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