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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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으나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나의 삶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고, 기적적이지만 기적 따위는 없으므로 나의 삶은 필연이라는 애처로움일 수도 있고,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인한 것인가, 보라.
!는 안 어울림. 그렇게 외칠 종류의 말이 아니라.
나는 "존재"하는 것이므로 기적은 필요 없다. 이미 존재로서의 실증이 당위나 우연에 앞서기 때문에
영혼이 새까만 상처입은 즘생과 같은 그런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실 진짜 영혼이 새까만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유약하고 여린 선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고민하는 법이라.
나를 펼쳐보아 검은 영혼을 본 자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 내 영혼은 까맣게 참이니까 혹은 참과 거짓이 없는 기적과 요행이 없는 영혼의 한 지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