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2023모358 과태료 일부인용결정에 대한 재항고 (자) 파기환송

[수사기관에 의하여 감정을 위촉받은 사람이 증인으로 소환되었으나 불출석하여 과태료를 부과받은 뒤 과태료 부과결정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사건]

: ◇경험한 과거의 사실을 진술할 지위에 있지 않은 감정인에 대하여 증인 또는 감정증인으로 소환한 경우, 소환장을 송달받고 불출석한 감정인에 대하여 불출석에 대한 제재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 증인은 선서하고 경험사실 진술할 의무 부담(08도942)

- 형소법이 법원에 증인 소환 강제(과태료, 구인) 권한 부여한 이유는 사건 실체 규명에 가장 직접적, 핵심적 증인으로 하여금 법정 와서 선서 후 증인하도록 하고, 법원은 증인 진술 토대로 형성된 유무죄 심증 따라 실체 규명하도록 하기 위함(증인에 대한 강제수단은 실체적 진실 규명 위한 대체가능성 없는 증인에게 인정되는 조치임)

- 감정인은 학식, 경험 따른 진술, 보고; 증인 규정 준용은 되나 소환 응하지 않아도 구인은 불가능

- 감정인이라 해도 특별 지식에 의하여 알게 된 과거의 사실에 관하여 진술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증인의 지위에 해당하는 감정증인으로서 증인신문절차에 따라 신문하여야 하나(형사소송법 제179조),

- 감정인이 감정을 하여 감정서(형사소송법 제171조 제1항)를 제출한 경우에 그 기재된 의견에 관한 설명을 추가로 듣는 절차(형사소송법 제171조 제4항) 등은 감정인이 과거의 사실을 진술하는 지위에 있지 않은 이상 증인신문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1편 제13장의 감정에 관한 규정에 따라 소환하여 진행하는 감정인신문으로 하여야

> 감정인신문에서는 불출석 제재로 과태료 불가

- 이러한 법리는 선서한 감정인에도 마찬가지고, 감정서 제출한 감정인의 법정진술이 경험한 과거 사실이 아니라 전문적 학식, 경험 관련이면 마찬가지로 감정인신문임

- 학식경험에서 얻은 진술은 다른 감정인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 - 이와 다른 전제에서 증인이나 감정인으로 소환해 신문한다면 증인한테나 인정되는 법정출석의무를 감정인신문 할 위치에 있는 자에게 인정하는 부당한 결과 - 형소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관계: 법의학자가 아동학대치사 수사 과정에서 골절 경위 등 감정, 감정서 회보

- 증인 출석 고지했는데 불출석하자 과태료

- 대법: 이런건 감정인으로 채택해서 감정인신문으로 결과 설명하게 해야하지, 증인으로 소환 후 불출석 페널티 줄 수는 없다

> 사건에서는 감정서가 증거로 제출 안 된 사정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소송지휘권 적절히 행사해서 증거신청 변경시키거나 했어야 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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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1.  (1) 2025.02.04

한국에는 존나 뻔한 사기인데 사기로 인정이 안 되는 유형들이 몇개 있는데...

주로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투자"를 받는다고 한 다음 '데헷 사업이 잘 안되었네요~★' 하면서 튀어버리는 것들이 그것이다.

문재인 때 태양광, 코로나 때 마스크 공장 등... 니가 얼마를 투자하면 연 얼마를 보장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후, 대충 짓는 둥 마는둥... 인허가 받는둥 마는둥... 하다가 인허가가 반려됐슈 우리도 돈이 없어요 지금 힘들어요 어쩌고 저쩌고 돈 돌려 드리겠습니다 하다가 잠적... 약간 돌려주고 잠적... 반복하다 피해자가 화나서 소 제기하고 자산 떼 보면 이미 아무 것도 없고, 주소지 보면 다 지 마누라/자식/형제 소유로 소유권 다 돌려놓고.

이런 것들의 경우 "고의" 입증이 안 되어서 사기죄로 의율이 안되고, 그러다 보니 불법행위도 안되고, 불법행위가 안 되면 투자는 대여가 아니라서 사업 망하면 자기돈 날아가는 리스크 있는 거기 때문에 자금 회수도 안됨. 설령 불법행위 인정이 되어도 이런거 해먹는 꾼들은 한국에서는 매스컴이라도 타기 전까진 추적 못X 안O한단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마누라 자식 형제한테 다 돌려버리고 민사 승소 판결 받아도 한푼도 안줌(주1).

 

그리고 요즘 또 보이는 세태가... 약국 개국 사기.

의사나 변호사는 개업할 때 "컨설팅"이 달라붙는데 약국은 "브로커"가 달라붙는단 말처럼 약국 개국은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의룡인들께서는 '나 없으면 너 망한다?'하면서 건물 1층 약국에 현금 내지 인테리어 비용 등을 전가시키는 경우가 아예 관행이 되어 있는데,

차라리 인테리어면 최소한 '내가 한동안 여기서 영업할거다'란 표지라서 좀 낫다는 걸 이번에 느끼게 되었다...

바로바로... "돈으로 주세요" 한 다음 폐업하고 튀어버리기.

주로 임대인(건물주 자체보다는 주로 분양대행)와 의주빈이 짜고서 약사를 해쳐먹는데, 

1. 임대인이 개국하려는 약사에게 "건물 3, 4층에 365 병원이 들어올 거에요. 피부과 이런 거 아니고 처방과임! 그러니까 니 임대료를 비싸게 책정하겠습니다"라고 함

2. 약사의 미래는 (1) 평생 월급 안오르고 페이약하며 근로소득받기/(2) 개국해서 사업소득벌기/(3) 기존 약사의 길을 버리고 어디 화장품회사(like 나쏠 20기 현숙)나 제약회사 들어가기 세가지 뿐이며, 의약분업 하에서 약국은 자연스럽게 같은 건물에 병원이 있냐 없냐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기 때문에 병원, 특히 처방전 뿜어대는 처방과가 있으면 일단 들어옴.

3. 관행이 된 불법에 따라 약사는 위에 들어오는 병원한테 "지원금"을 바침 - 올해 약사법/의료법 개정에 따라 병원지원금 제공/수수/알선/중개는 의사 약사 둘 다 자격정지 + 징역or3천 이하 벌금 빔이 날아옴(약사법 제24조의2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제공 금지). 근데 뭐 어떡해. 안주면 의사가 '나 영업 안함 ㅅㄱ', '상품명처방(주2) 하니까 니 약국에 없는 걸로 처방할거임 ㅅㄱ' 등으로 갑질해서 약국 폐업시켜버리는데.

4. 보통 관행은 뭐 인테리어를 약국이 해준다든가, 보증금을 대신 내준다든가, 하는 건데, 요즘은 걍 돈을 받아먹음. 뭐 그래도 일을 해서 약사가 돈을 벌면 어쨌든 누이좋고 매부좋고인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

5. 병원이 개원을 안함! 정확히는 '원장들 간 문제가 있어서...', '간호사가 갑자기 출근을 못한다고 해서...' 하면서 개원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약사한테 제조약 리스트도 안보내줌. 아예 아무것도 안하면 사실 누가봐도 사기니까, 애매-하게 함. 뭐 네이버 지도에 병원 등록도 하고, 일단 행정상으로는 오픈도 하고, 안에 인테리어도 (돈 안들이고) 대충 뭔가 하고, 전단지도 뿌리고... 그러나 아무튼 병원 개원을 안 함. 돈은 받아쳐먹어놓고서.

6. 그러면서 약사랑은 연락이 됐다~ 안됐다~ 내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룸. 이제 약사는 생각했던 거랑 현실이 너무 달라져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함

7. 그러다가 결국 개원을 하긴 함. 근데? 뭐 저렇게 대충 해서 장사가 되겠나? 1~3달만에 폐업하고 튀어버림. 받은 돈은? 당연히 안돌려주지.

8. 약사가 분기탱천해서 야이 개새끼 사기꾼아 하면 이제 헬반도 엔딩이 나는데

1) 허허허 사기라뇨? 저는 행정상 오픈도 했고, 인테리어도 (존나 가라지만) 했고, 전단지도 돌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근데 장사가 안돼서 닫은건데 어떡해용? 무능이 죕니까? 장사가 안된게 죄에요? 촤하하하 

2) 사기? 사기면 어쩔껀데?  너 돈 준거 불법이잖아. 개국하느라고 돈도 많이 끌어다 썼을텐데 자격정지 맛좀 볼래? 그리고 그거 불법원인급여라서 돈 못돌려받음~ 하고 역 협박하기

임대인한테 하소연 해봤자, 임대인도 이미 한 통속이기 때문에 아무의미 없음. 계약서에 "병원이 들어온다는 조건 하에 이렇게 한다"란 조항 있어봤자 별 의미 없는게, 위 7. 따라 아무튼 들어는 왔음 ㅅㄱ하고 가버리고, 법원도 판사마누라가 약국사기 당하는 일 발생하기 전까지는 '아무튼 들어왔잖아. 임대인은 거짓말한적 없음'하고 판결내버림. 건물주면 뭐 거기서 드러누울수라도 있지, 앞서 말했듯 보통 '분양대행사'라서, 건물주도 '난 몰라'라고 해버림. 

그러면 약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죽고 나죽자로 의사 고발하면서 자수하기 뿐. 뭐 자수하면 약사법 제24조의3 따라 책임감면 받을 수 있으니까 부부약사시면 한명 면허 정지당하고 나머지 한명 면허로 장사한다고 생각하고 찌르면 된다. 아니면? 뭐... 한국에서 법은 멀고 칼은 가까우니까 의사랑 분양대행사한테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고 사정한다음 칼로 찔러버리는 게 빠름.

이걸 막으려면... 애초에 부동산 계약할 때부터 변호사 끼고 들어가면서 계약서를 if~ else~ 하면서 누더기로 만드는 게 맞는데... 한국은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책임도 안지며 자주 보는 매도인/임대인 편이지 임차인/매수인한텐 관심도 없고 가끔은 사기꾼들이랑 짜고 치는 공인중개사들한테는 몇천만원씩 퍼주면서 변호사한테 돈을 안 쓰는 나라기 때문에... 전국민에게 더글로리 강제시청시키면서 하도영 선생님의 명대사를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가르치든가 해야지 뭐.

 

다른 방법도 있는데, 소위 유형화된 사기들에 대해서 고의를 쉽게쉽게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건 사회에서 해당 유형 사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성숙하면 그렇게 되는데, 가령 옛날에는 보이스피싱 수거책 이런 애들 대해서 사기방조범으로 잘 의율이 안 됐다. '진짜 고소득 알바라고 지하철 광고 보고 아무 생각 없이 했을 수도 있잖아'라는 건데, 이제는 보이스피싱? 일단 유죄추정에 가까움. 왜냐? 이게 사기꾼새끼란 걸 너도알고 나도알고 모두가 아니까. 보이스피싱 관련해서 판사가 당하니까 그때부터 세게 때린다 라는 소문이 있는데 진위여부는 모르겠고, 판사도 당할 정도로 흔해지니까 이제 그냥 이런 유형? 사기! 라고 인정하는 거에 가깝지 않을까? 싶음. 폰지류 다단계도 사실 암웨이 유사나처럼 다단계가 어느정도 규모를 갖추는 데 성공하면 폰지사기라고 안 부르지만, 나름대로의 아이템과 사업모델이 있고 실제로 창업주가 진짜 열심히 해보려던 사업이라 해도 조직이 성숙하기 전에 펑 터져버리면 바로 사기(+유사수신)로 쳐넣어버리는 것처럼. 사회가 '이런 유형 짓거리는 니가 염병을 떨어도 걍 사기다!'라고 합의하고 있으면 본인이 아주 어렵게 고의 없음을 증명해야하고 피해자들은 구제받을 여지가(여전히 주석1 따라 별로 없음) 약간이라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법원은 코로나 마스크공장, 태양광사기, 약국사기 이런 것들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널리고 깔렸는데도 인정을 잘 안해줌. 대충 외관만 갖췄으면 '얘가 노력했는데 사업이 안풀려버렸잖엉 투자금 받은 건 어디 룸싸롱에 날려먹었는지 지 마누라 명의로 빼놨는진 모르겠지만 암튼 없대잖앙'하면서 땅땅 사기무죄 손해배상부당이득청구 기각~ 사기꾼아 잘먹고 잘살렴~ 하면서 풀어주기 때문에...

결론을 뭐라 내야 하나... 음... 엥간하면 사기 칩시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선 추징 못합니다? 쩝.

 


주1) 우리나라는 참 병신나라인게 개인이 자기 마누라나 형 명의로만 해 놔도 민간 차원에선 추징할 방법이 없음. 강제집행면탈죄로 검찰까지 가서 유죄 받아야 드디어 뭘 뺏든말든 할 수가 있는데 검수완박 이후로 돈이 왔다갔다 하느라 9급 순경들 두뇌로는 감당 안되는 경제사건은 고소장 넣어도 아무 소용 없거나 최소 2년 걸린다고 보면 됨. 사기, 공갈, 횡령, 배임 4대 경제범죄 중 순경들이 처리할 수 있는 건 협박공갈, 중고나라, 보이스피싱밖에 없다. 2년 지나면? 이미 세탁완료~ 하다못해 임대계약을 '제 형 명의로 했는데요?'라고 하면 임대차보증금도 못뺐는 나라임ㅋㅋ

주2) 약은 당연하지만 최초 개발사가 만드는 원본 정품 약이 있고, 생동성 실험 통해서 그거랑 똑같은 성분으로 똑같이 만들어서 똑같은 효력 있다고 인정받은 제네릭(카피약)이 있는데, 의사가 처방을 할 때 그 동일한 "성분명"으로 처방하냐, 특정 "상품명"으로 처방하냐 두 가지 제도가 있음. 우리나라는 상품명처방. 가령 의사가 '실데나필(성분명) 처방합니다' 라고 하면 약사는 비아그라를 팔든 팔팔정을 팔든 지 맘대로고 그냥 자기 약국에 있는 재고 팔면 되지만, 의사가 한미약품한테 돈받고 '팔팔정 처방합니다' 하면 약사는 팔팔정을 줘야 하고, 같은 성분 다른 걸 줄라면 의사한테 알려야 됨. 그리고 환자 입장에선 '에 그 약 없어요? 그럼 딴데갈래용~'해버리고 약국은 망하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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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techne는 로마로 오면서 라틴어 ars로 번역됐는데

테크네는 딱 봐도 테크닉인 것처럼,

스펠링부터 이게 현대의 art구나 싶은 ars는 '예술'보다는 '기술', 그냥 '術'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함

한국에서는 'art'가 보통 '예술'로 대응되는데 그건 사실 fine art고

교양학부가 자유롭게 이런저런 걸 배우니 liberal arts인 것처럼 art자체는 그냥 -술로 번역되는 게 맞다.

그런 점에서 art of loving인 이 책의 제목은 기실 굳이 따지자면 '사랑하는 기술'/'사랑하는 법'정도가 의미에는 제일 맞닿아 있다 할 것이지만...

사랑의 기술이 역시 제목으로서의 간지는 가장 잘 챙겼다..

예전 여자친구 애프터때 같이 북카페 갔다가 산 책을 1년이 지나서 헤어지고 나서야 읽음...


aol.pdf
0.36MB


 

결국 결론은,

사랑은 하는 것이고, 단순히 이성간 사랑이 아니라, 결국에는 인류애적 개념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며,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란 게 얼마나 왜곡된 형태로 있는가

자본주의는 사람을 얼마나 분해하고 파편으로 만드는가

그런 세상에 대한 대결수단으로서 사랑이 필요해 amor vincit omnia

힘들고 제멋대로인 세상에서 내가 항상 강하고 이길 수만은 없는데,

그 흔들리고 괴로울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수 있다면/그 사람이 힘들 때 내가 그 옆에 있어줄 수 있다면 그게 삶에게 이기는 방법이다, 라는 게 내 결론.

 

 

그리고 변호사란 직업에 대해서 조금 더 만족하게 됨... ㅋㅋㅋㅋㅋ 분업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이 일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갖고 일하면서 월급타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 아무리 업계가 씹창나고 있다 하더라도 일의 본질로서 그 부분은 안변할테니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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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참하거나

교: 만하거나

잘만들었네;

결국 정신이란 뇌라는 복잡계의 내부상호작용의 결과라는 현상에 불과하므로

(뇌)과학의 발전과 함께 모든 관념론은 유물론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었으나....

이는 지나치게 환원주의 내지 결정주의적이며 미시영역을 거시영역으로 확대해석하는 관점인 것도 같으며(그야말로 반박만 안 당할 뿐 아무 설명력이 없는)

대한민국의 현재 꼬라지를 보며 30대에는 이러한 세계관을 조금 수정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 많나니

하부구조가 결국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것과 별개로 상부구조도 하부구조에 당연히 영향을 미치고

또 그런 상부구조로서의 짜잇가이스트라는게 개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란 게 분명히 있으니 저 깊은 뿌리라는 것을 하부구조가 아니라 상부구조의 어떤 영역으로도 볼 수 있고,

사회가 공유하던 가치-숭고, 미덕-이 붕괴된 시대에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타락해가는지를 2020년대의 대한민국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 시대 세계사의 격동 속에서 패배한 결과 "전통"이란 것이 우스운 것이 되어버리고, 혁파와 타파의 대상;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이라 하고 있지만 실질은 양옥에서 양식 정체와 법제와 양옷을 입고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 서양 유학을 하고 있는", "시지프스의 엉덩이 밀기꾼"들의 거대한 사상적 고아 국가; 선물처럼 찾아온 민주주의, 로자: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독재를 행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노동자의 자기 해방이 아니면 안 된다. 누구도 당신을 위해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사람은 없다; 쓰레기통에서 장미는 피지 않는다, 하지만 진탕 속에서 연꽃은 피지, 그러나 요점은 그것이 장미든 연꽃이든 쓰레기통 내지 진흙탕이란 것이다, 연꽃이 피었다고 하더라도 그 씨앗은 누가 뿌린 것인가?, 꽃은 폈더라도 그것은 서양 연꽃이라는 것; 한강의 기적 - 천연자원이 없어 인적"자원"이 풍부해야 하는 나라, 계몽의 끝으로써 인간의 인간에의 지배, 나를 갈고닦아라 자원이 될 수 있게 내 안의 자연이 인간이 되도록; 인간이 자본을 지배할 때가 아니라 자본이 인간을 지배할 때를 인간 소외라 하기로 하였으니; 반쪽짜리 혁명 86체제 - 일단 나쁜 놈을 끌어내자는 건 좋아, 직선제 좋아, 그런데 그걸로 뭘 하겠다는 것이지? 사상의 미아 - 다시 처음으로,

지킬 가치가 없고 이념이 없으니 86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조금 과격한 정권교체에 불과하다. x86이 병신이라서? 시위나 하고 술이나 퍼먹고 계집질이나 하던 이기적이고 무식한 세대인 것과는 별개로 별 수 없지, 쓰레기통에 장미를 피워내야 했는데. 중화의 무대가 아닌 세계사의 무대에 패배자로 내던져지고, 황국신민에서 다시 대한민국 국민이 된지 40년만에 별 수 있나. 전통이란 것의 어디가 패배의 원인이고 어디는 억울하게 매도당한 것인지 해부하기에 40년은 너무 짧다. 그 앞에 3년짜리 전쟁이 있으면 더 짧고, 패배가 36년짜리라 송장들이 너무 많이 살아있으면 더 어렵고.

정신의 타락 - 코인, 부동산 폭등, SNS, 데이팅 앱; 검수완박과 함께 "5년간 마약 불과 5배 늘어..." 씨팔놈의 좆팔육새끼들 못하는 말이 없어요 저게 말인가 진짜; 엄마 난 왜 장원영 차은우가 아니야?, GOD, 시크릿 - 짠내나는 성장서사는 이제 집에서 구몬하던 힙찔이들에게 넘어가고, 숭배의 우상은 이제 "귀티", "금수저"여야; 비교, 비교, 비교; 거북이: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어, 도파미네이션 - 결국 일론 머스크라도 되기 전까지는 비교는 끝이 없고, 인간 뇌는 현재의 조건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현재로부터 행복을 거둘 수 없는 것으로 적응해버린다, 최승자: 괴로움/외로움/그리움/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더 열심히 일해서 돈 더 벌어봤자 행복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사피엔스: 마치 부처와 같이, 어떤 사람은 그냥 어떤 악조건에서도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어떤 high condition에서도 불행한 것, 요즘 유행하는 쇼펜하우어, 일체유심조;

 

다시 처음으로, 관념이 물질 조건을 지배한다, 정확히는 물질 조건은 관념-의식에게 적응당할 뿐 관념을 지배하지 못한다. 끝없는 갈증의 고리 뿐. 뇌과학이 발달하니까 다시 내려지는 결론, 결국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내려놓아야 할 뿐, 어차피 꼭대기에 가지 못한다, 상승욕구는 불행의 근원일 뿐; 열반 - 꼭대기에 "내려 놓음", 올라가라, 내려놓아라,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 산 정상에 선 자들이 항상 하는 일이다. 그들은 도로 내려가지; 상선약수, 그저 물처럼,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운명, 강으로, 바다로, 하해불택세류, 그러다 다시 증발해 하늘로, 구름으로, 비와 눈으로, 내려앉아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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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 뺏고, 밟고, 퍼내도 아깝지 않을 그런 것이, 에이 여보쇼, 어딨단 말씀이오?” “있지요.” “뭡니까?” “사랑과 시간.” 나는 경악하여 넉넉히 십 분 남짓을 망연자실한 끝에 모기 소리만하게 대꾸한 것이다. “여자여, 그대의 언(言)이 미(美)하도다.”

김동인한테서는 역사 감각이란걸 조 금도 찾아볼 수 없어. 그가 역사 소설을 썼다는 것이 그 증거야. 그에게는 이야기로 들은 역사, 이미 화석이 된 역사밖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모양이지. 그의 현대 소설에는 날짜 표시가 없어. 그 인물들 은 이조 시대라도 좋고 일제 시대라도 좋고 오늘이라도 좋은 사람들 아닌가? 그의 소설은 역사의 비 명(碑銘)이 아니라 자연의 가락이야. 바람과 물 같은 것이야. 발가락이 닮았다는 단편 있잖아. 그 래 발가락이 닮았으면 어쨌다는 거야? 삼천리 강산이 다 일본을 닮아 가는 판에, 발가락쯤 닮아서 무에 그리 신기한 게 있겠어? 역사를 자연과 헷갈리고 인간을 씨돼지와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김동인은 일본의 침략을 독감 같은 걸로 알았던 모양이야. 그에 비하면 이광수는 훌륭해. 다른 작품 은 다 말고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한국 최대의 작가야. 그 시대를 산 가장 전형적 한국 인텔 리의 한 사람을 무리 없이 그리고 있잖아? ‘살여울에서 한 그의 사업이 성공했느냐 못 했느냐는 물 을 바가 아니지. 그는 그 당시 국내에서 살았던 낭만적인 인간의 꿈을 그린 거야. 그는 시대의 큰 줄 기가 무엇인지를 보는 눈이 있었어.

그러나 자네가 말한 한국 문학의 문제도 역시 한국적 상황 일반의 부분적인 형태라는 게 내 생각이야. 한국의 문학에는 신화(神話)가 없어. 한국의 정치처럼 말야. ‘비너스란 낱 말에서 서양 시인과 서양 독자가 주고받는 풍부한 내포와 외연(外延)이 우리에게는 존재치 않는단 말이거든. 서양의 빛나는 시어(詩語)나 관용어들이 우리의 대중 속에서 매춘부로 전락하는 사례를 얼 마든지 들 수 있어. 가로되 니콜라이의 종소리’ ‘성모 마리아’ ‘슬픔의 장미’ ‘낙타와 신기루’ ‘아라비 아같은 거. 이런 말은 그쪽에서는 강렬한 점화력을 가진 말이야. 왜냐하면 그 말들 뒤에 역사가 있 기 때문이야. ‘니콜라이의 종하면 희랍 정교회의 역사와 비잔틴과 러시아 교회와 동로마 제국의 흥 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게 아니겠나? ‘성모 마리아는 더 말해서 뭣해? 바이블과 카톨릭 중세 기사 들의 순례와 수억의 인간이 긋는 성호(聖號)가 이 고유명사를 받치고 있지 않아? 탄식의 장미는? 장 미꽃을 빼고서 서양 문학을 말하는 건 달을 빼고 이태백이를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사막’ ‘낙타’ ‘아라비아같은 것도 마찬가지야. 유럽의 모험과 통상(通商)의 역사를 빼고 이런 이미지를 이해할 수 는 없을 거야. 그것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아라비아의 로렌스와의 이상한 혼합물이야. 주민과 풍토에 서 떨어진 신화는 다만 철학일 뿐 신화는 아니야. 신화는 인간과 풍토가, 시간과 공간이 빚어 낸 영 혼의 성감대(性感帶). 거기를 건드리면 울고 웃고 발정하고 손톱을 박아오는 그러한 지역이거든. 이 성감대가 없고 보면 애무는 부자연한 장난이며 실례이며 변태에 지나지 않고, 독자는 불감증의 게으른 잠에서 깨지 못해. 한국의 현대시와 그 독자는 서툰 부부와 같아. 그렇다고 우리는 돌아갈 만 한 전통도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전통은 자칫 우리들의 헤어날 수 없는 함정이기 십상 이다. 흥얼거리는 타령조와 질탕한 설움 속에 너울너울 춤추는 선인들의 미학은 불쌍한 우리들 개화 손(開化孫)들의, 그나마 탐탁지 못한 얼을 빼고 골을 훑어서 급기야 하이칼라 머리를 몽똥그려 상투 를 꼬아 줄 테니까. 우리들에게 있어서 서양은 매춘부와 같고 선인들은 물귀신 같애. 귀신이래서 나 쁜 것은 아니지. 다만 사이렌과 발푸르기스의 마녀들의 후손은 달을 포격하기에 이르렀으나 손오공 의 후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늘을 나는 모포와 사이렌의 피리는 살아 있다. 그러나 손오공의 여의봉은 어디 있는가? 그들의 경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나 우리는 끊 어져 있다. 전위(前衛), 보수(保守)란 말은 우리들의 경우 이중의 뜻을 가지고 있어. 우리들에게도 전 위란 여전히 서양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그 상대는 보수적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겹의 얼굴 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저들은 단단한 벽돌 위에 얹힌 풍차와 싸우고 있으나 우리는 허공중에 거꾸 로 매달린 허깨비와 싸우고 있어. 우리는 돈키호테도 될 수 없어. 저들은 낡은 신화를 부수고 새 신 화를 세우기 위해 시를 쓰지만, 우리에게는 부술 신화가 없고, 서양의 그것은 서양 시인들이 부술 것 이며 동양의 그것은 이미 폐허가 돼버렸으니 부수려야 부술 수 없어. 우리들은 패배한 종족이야. 상 황은 뚜렷해. 우리들은 몇백 년 혹은 몇십 년씩 식민지민(植民地民)이었어. 동양은 백인들의 노예로 서 세계사에 끌려 나왔어. 맞먹는 경기자로서가 아니야. 이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해. 피카소에게는 필연적인 일이 우리에게는 필연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봐. 에어플 레인을 날틀이라고 말해 본대서 무에 달라지겠는가 말이야. 비행기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손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리들의 몸이 비행기의 떨림에 더 많이 친근해지는 때에만 가능해. 문제는 말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의 공간에 있지. 언어로 친다면 우리도 과히 빠지지 않아. 지난날 우리에게 언어는 즉 존재였지. 언어 그것이 목적이었지. 그러나 서양인들에게는 그것은 부호였어. 그것은 작업 을 위한 눈금이며 수획의 기록이었다는 거야. 서예(書藝)라는 예술이 이 같은 차이를 잘 말해 준다고 볼 수 있어. 언어가 부호이기를 그치고 존재로 승격했을 때 우리는 존재를 잃었지. 그래서 가장 풍부 한 언어인 한자(漢字)는 가장 가난한 언어가 되었고 가장 소박한 표음문자는 그 속에 풍부한 역사의 육신을 가지게 되었어. 신화의 부재란, 사실은 역사의 부재였던 것이야. 언어는 생산하지 않아. 다만 역사, 행동만이 생산해. 언어는 그 생산고(生産高)를 기록할 뿐.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Age)라 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결코 기계적인 실러블의 배합의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화사적 부호인 거야. 그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도 좋아. 가령 불독(Bulldog)이라도 좋아. 그렇더라도 그 시대가 동 일한 것인 이상 우리는 불독 시대(Bulldog Age)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와 동일한 심상(心象)을 받을 게 아닌가? 부잣집 딸이 설사 천둥이라는 이름을 가졌대도 거기서 따뜻한 유머와 화려한 익살을 볼 테지. 그러나 심봉사의 딸인 한, 그녀가 선화공주란 이름을 가졌대도 별수없어. 거리에 나앉은 성명 철학자들을 찾는 것이 부질없는 건 이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하면 시의 창조적 기능이나 예언으로서 의 기능을 잊었다고 할 테지만 창조나 예언도 인간에 관한 한 운명에 대한 모험이란 뜻일 테고, 운 명에 대한 모험이란 어차피 역사에 대한 반격 형식이 아닌가? 우리가 무리했던 것은 우리들의 현 재에 통과시킴이 없이 엉뚱하게 파리에 혹은 서라벌에 비약한 데 있지 않겠는가 말이야. 파리도 서 라벌도 우리에겐 이방(異邦)이야. 이제까지 우리는 오해하고 있었어. 이 같은 현상이 왜 문학에 한한 일이겠어? 이건 한국의 상황 일반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문학 자체에만 책임을 묻는 건 너무 가혹 하다는 거야.”

 

그것도 역시 거짓말이야. 혁명이 가능했던 시대라는 건 어디도 없었어.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던 거 야. 이런 역설의 논리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만 뚫렸어. 그 의지의 발동을 망설이는 것을 나는 비겁이라고 부르는 수밖에는 없어.”아마 그럴 거야.”준의 말투는 화난 듯했다. 학은 친구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방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휘청 했다. ? 하고 준이 눈으로 물었다.가겠어비가 오잖아. 자고 가.”아니, 오늘은 가봐야 돼.”그래?”준은 더 말리지 않고 친구를 따라 방을 나갔다. 바깥은 안에서 낙숫물 소리로 짐작한 푼수로는 덜한 비였다. 안개보다 조금 무거운, 그러나 몹시 차가운 가을비였다.정말 가겠어?”준은 손바닥을 펴서 비를 받는 시늉을 하면서 다시 한번 물었으나 학은 곧장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학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자네 말이 맞는지도 몰라.”

 

여러 가지 구불구불한 잡담을 다 제하고 간단히 말한다면 그는 외로웠기 때문에 별하늘을 사랑하게 되었고 뒤늦게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졌다는 말이 되겠지만, 간단한 일을 간단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그 나이의 병일진대 그런 호걸스런 충고는 독고준에게 아무 쓸모도 없다.

사람의 가슴속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가장 소중한 물건이란 이렇게 시시한 일일까?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본다면 하찮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게 진주(眞珠)라 는 데 문제는 있다. 거기를 건드리면 언제나 울리고 아프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올라구.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다른 누가 와서 또 한번 겁탈하는 것을 기 다리는 실성한 갈보처럼 우리 엽전은 언제까지고 임을 기다릴 것이다. 사랑과 시간. 엽전 의 종교. 하하. 속으로는 번연히 괘가 그른 줄 다 알면서 얼렁뚱땅 거짓말이나 해가면서 처자식 고생이나 시키지 않게 처신하는 유식한 분들이 정치를 하고 사업을 하고 신문을 내 고 교육을 하는 판에, 백년하청이지 어느 날에 물이 맑아질까. 그러니까 혁명이라? 싫다. 누가 이 따위 엽전들을 위해서 혁명을 해줄까 보냐. 아까운 목숨을 걸자면 좀더 귀여운 사 람들을 택해야지. 독고준 자네는 엽전 아닌가. 그러니까 엽전답게 목숨을 아낀단 말이다. 나는 더러운 고슴도치처럼 혼자만 웅크리고 살다가 나만큼 비열하고 그저 그만한 여자가 있으면 같이 살아도 좋고. 그러니까 김학 선생. 나는 당신이 좋으면서 싫어. 당신은 내 생 활을 어지럽히니까. 되지도 않을 일로 슬픈 환상을 일으켜 주니까. 김학 선생, 당신의 순정 은 잘 알아. 그러나 난 엽전의 생리를 잘 알아. 내가 엽전이니까. 안 될 거야. 잘 안 될 거 야. 실은 그게 아니야. 서양 아이들 등쌀에 제대로 되겠어? 그 애들의 거창한 힘과 겨룰 수 없어, 김학. 엽전답게 살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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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한은 풀어야 하고, 욕망은 이루어져야 해. 정치적인 강간의 상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그 국민은 정치적으로 불감증이 돼. 정치에서 어두운 면만 보고 외면해 버려. 그저 몸으로만 당할 뿐 감 격을 모르고 산다는 얘기야.

 

5

쓰레기통에서장미꽃은피지 않는다그러나강간속에서는민주주의가핀다그리고진흙에서연화는핀다

그 중에서 그는 고무줄로 묶어 놓은 대학 노 트 꾸러미를 꺼냈다. 일기장과 비망록이다. 그는 가끔 그것을 꺼내 읽는다. 이런 일이 있었 던가 싶은 사건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떤 구절에서는 쓴웃음을 짓는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생활의 기록이다. 그는 끌리는 대로 한 권에서 몇 군데씩 띄엄띄엄 읽어 갔다.

 

 

그런 놈이 버젓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사회는 이 꼴이다. 그런 사람을 버려 두기 때문 에 드라마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속인 인간. 자기를 가장 믿는 인간을 밟은 녀석은 사람 이 아니다. 김학이 모양으로 국가 민족을 상대로 흥분하도록 내 영혼은 고상하지 못하다. 내게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입었을 때 내 신경은 곤두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 렇게 한다면 정의는 가장 확실히 행해질 이치가 아닌가. 죽이자는 것도 아니다. 그를 협박 해서 불안하게 만들고 인생이란 장미꽃 가시 하나에 의해서도 파괴된다는 것, 손바닥만한 종이 한장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자. 그리고 그에게서 돈을 착취하자. 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제일 중한 물건은 돈일 테니까.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아픔일 테 니까. 심장이 돌처럼 굳어진 사람을 울리자면 돈을 뺏는 수밖에 없다. 학비 정도가 아니고 많이 뺏자. 착실한 학생을 몇 명 골라서 학비를 대주는 것도 좋다. 우선 납부금 낼 때마다 찔끔거리는 주인집 영숙이를 공부시킨다.

 

혼자라는 생각이 이상한 감동을 주었다. 혼자 다. 가족이 없는 나는 자유다.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다, 라고 예민한 서양의 선각자들은 느꼈다. 그들에게는 그 말이 옳다. 우리는 이렇다. 가족이 없다, 그러므로 자유 다. 이것이 우리들의 근대 선언이다. 우리들의 신은 구약(舊約)과 신약 속에가 아니고 족보 속에 있어왔다. 우리들의 우상은 십자가에 박혀 스스로 죄를 짊어진 한 인간이 아니고, 항 렬과 돌림자로 새겨진 족보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의 신은 ‘집안’이요 ‘가문’이었다.

 

김유정-어린날 그 여자가 닮음

6

내셔널리즘 

요코하마 폭격이 미치광이 광대가 된 것 - 집단이 이제는 무기물

"뭐, 행복한 사람들은 곧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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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아직도 2․4파동의 뒷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민주주 의의 조종(弔鍾). 독재의 횡포. 다수당 횡포. 빈사(瀕死)의 국민 주권. 그런 말들이 눈에 들 어왔다. 다수당(多數黨)의 횡포.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가 아닌가. 다수결로 통과되었으면 그것은 합법인 것이다. 그 다수당을 만들어 준 것은 국민이 아닌 가. 그런데 그 국민은 다수당을 지긋지긋한 악당들로 보고 있고. 이 순환. 이 순환의 형식 면만 본다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수당이 만들어진 구체적인 과정에 부정이 있는 것이 다. 민주 국가에서 다스리는 원천(源泉)인 투표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나쁜 놈들이 다수당이 되고 마는 현실.

 

어떤 사람이든 자기의 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등록이 된 신인가 아닌가에 차이는 있을망정, 그 사람의 얼을 가장 확실하게 움직이는 힘을 가지는 한에서 그것은 신이다

 

8

혁명에는 들고일어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것 이 없이는 들고일어난 다음에도 수습할 길이 없어. 그게 무언가? 새 세력이야. 현 집권자 들을 가령 몰아낸 다음 에 정치를 맡을 수 있는 사람들 말이야. 어느 혁명이든 이런 새로 운 전위대를 가지고 있었어. 크롬웰 의 청교도라든지, 불란서 혁명의 계몽주의자들이라든 지, 러시아 혁명의 볼셰비키라든지, 일본 유신의 왕당파라든지, 하는 광범한 사회층을 기다 려서 비로소 가능했어. 그리고 이 사람들은 당시의 낡은 질 서를 반박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어. 즉 혁명은 사상과 엘리트와 대중의 삼중주라고 할 수 있어. 이 셋 가운데 어느 하나가 빠져도 혁명은 성공하기 어려워. 그러면 오늘날 한국에서 새로운 사 상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는 현실이 이 사회에서 공인(公認)된 사상의 악에서 나오 는 걸까? 그건 아니야. 민주주의가 어디서 발생했건 이건 훌륭한 사상이야.

 

우리 민족도 그 성화(聖火)를 면면히 계승해 오다가 동학에 이 르러 그만 놓쳐 버렸어. 그러자 나라는 망했어. 오늘까지 이 꼴이야. 우리는 지금 황량하기 그지없는, 신의 사막에서 기술 교과서만 뒤지고 있어. 이 사막을 가로질러 오 아시스로 가 기 위해서는, 신의 약속과 사랑을 믿는다는 일이 절대 필요해. 우리 현실이 사막처럼 막 막하면 할수록 그래. 그런데 우리들의 신들은 저 석굴암에서 관광 손님 상대로 무료한 세 월을 보내 거나, 조상 제삿날에 가끔가끔 다녀가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기독교에서의 개인(個人)은 완전히 수학적인 동질성(同質性)을 가지고 있어. 이것은 신(神) 의 시점(視點) 위주기 때문에 그래. .... 그러나, 공을 깨닫는다 하더 라도, 현실의 인간이 서는 자리는 그래도 인간인 것이지 신은 아니야. 사람이 깨닫는다는 것은 비인(非人)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인(眞人)이 되는 것이야. 마치 석가모니가 법을 알 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현신(現身)한 것처럼, 깨달은 사람도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 간 세상에 머무는 길밖에는 없어. 불경에 보면, 보살은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 스스로의 성 불을 미루었다고 했어. 보살도 인연에 매여 있는 거야. 사랑은 이렇게 구체적인 거야. 불교 가 가르치는 사랑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지, 추상 적인 남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야. 이것은 사해 동포의 이상에 조금치도 어긋나지 않아. 왜냐하면 사해 동포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국 바로 곁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해 가는 길밖 에는 없지 않나. 불교의 사랑은 이렇게 실천적이고 구체적이야. 서양의 어떤 소설가가, 자 기는 인류는 사랑할 수 있으나 고약한 바로 이웃은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의 이야기를 쓴 걸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바로 기독교의 그와 같은 허(虛), 추상성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

 

9

외국 유학이란 게 선진국의 학술과 생활을 배우러 가는 것이라면, 이제 말한 것처럼 학문 쪽은 우 리 같은 과에서는 유학이 무의미하고, 다른 한 가지, 즉 생활을 견문한다는 의미 에서라면 더욱 필요 없는 일이지요. 우린 지금 민족 전체가 유학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보 는 것, 듣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미국 문화 아니에요? 앉아서 경험하는데 뭣 하러 돈 쓰고 갑니까?

가령 여기 국내 문단의 모더니즘이 있습 니다. 무책임한 에피고넨(아 류)들. 문화적 문맥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베껴 낸단 말 씀예요. 자기들도 모르는 헛소리를. 전위라고 하지요. 무엇을 위한 전위입니까? 누구에 대한 레지스 탕습니 까? 정립(定立)이 없는 반(反)정립. 우리 예술 풍토가 그래요. 이건 이국 취미치고는 가장 나 쁜 것이죠. 이국 취미는 그 땅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아요. 그 땅에 가보고 싶다는 것. 그 예술을 생산한 풍토와 인간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래서 미국이나 불란서에 갔다 온 사람들이 어떻게 했나요. 한국 사람으로서 자기 주체(主體)를 반성한 사람보다도, 그쪽의 시민권을 얻은 데 만족한 사 람이 더 많은 게 사실 아닙니까? 외국서 돌아온 예술 가들은 미국 문학의, 불란서 문학의 선전원 자 격으로 돌아온 것이지 한국 문학에 대한 사 랑과 봉사를 마음먹고 돌아온 건 아니죠.

춘향이는 어차피 파마를 할 것이고 자동차를 타고, 끝내 는 재즈에 춤추고, 급기야 이몽룡과의 사랑에도 권태에서 오는 저 무서운 사랑의 파국을 겪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흐름입니다. 발상의 고삐야 누가 가졌든 게임의 승패는 분 명해요. 이런 경 우 사람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겠어요? 방관하는 것과 돈키호 테가 되는 것.

 

… 이 당구라는 놀음은 인간의 행동을 닮았다. 정작 때리고 싶은 것은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저렇게 굴절을 한 다음에 목표를 맞힌다. 정글 속에서 먹이를 만나면 사자는 서슴없이 직선 거리를 택해서 목적을 이룬다. 사람은 다르다. 빙빙 돌아서 한눈을 팔고 방관하는 체하다가 슬쩍 목표를 쥐는 것 이다. 그는 모서리에 바싹 붙은 공을 끌어서 꽤 무리한 공을 때렸다. 맞지 않았다. 그는 돌 아가서 다시 겨냥해서 때렸다. 딱.

 

서양 사람들은 시지프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시지프가 아니다. 우리는 ‘시지프의 엉덩이 밀기꾼’쯤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괴로움은 시지프의 고결한 고통과 수난의 얼굴을 닮지 않 고, 늘 어리둥절하고, 환장할 것 같고, 겸연쩍고, 쑥스럽고, 데데하고, 엉거주춤한 것이다.

사람만이 섹스를 놀이에까지 높였다. 동물들은 생리적 운동으로 그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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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준의 마음을 끄는 것은 카프카였다. 대상을 완전히 분해하지는 않으면서 거기서 을 탈색해 버리는 방법. 그러는 경우에는 리얼리즘의 모든 규칙을 지키면서 일상성과는 완전히 거꾸로 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세계는 전통과 질서에 대한 질문이다. 그가 처음 카프카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 문학이 이런 세계를 불러내는 것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을 잃은 세계에서의 인간의 고독. 권위를 잃은 세계의 뜻없음. 꿈의 세계. 분해과정에 있는 부르주아 정신의 말기 증상. 그것은 얼마든지 번역이 가능한 것이었다. 문학으로서 가능한 상징의 끝은 카프카일 것이다. 그 이상 더 밀고 나가면 그러한 극단을 가누기에는 언어가 견디지 못한다. 돌을 돌이라 하고 꽃을 꽃이라 하면서 돌이 아니게 하고 꽃이 아니게 하는 것이 카프카의 소설이다. 초현실주의라 하더라도 카프카의 그것은 이미지 서로간에 혼융과 교체를 허용하는 비고체(非固體)적인 경향과는 다르다. 카프카의 세계에서 의자는 의자다. 그러나 그 경우의 의자는 스핑크스처럼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의 소설을 이루는 낱낱의 장면에는 아무 비약이 없다. 그러나 그 결합에, 그리고 소설 전체가 한마디 수수께끼인 것이다. 이것은 놀랍고 비상한 물음의 방법이다. 정통적인 소설도 기실에 있어서는 수수께끼다. 가령 우리가 발자크의 그 세밀화처럼 분명한 소설에서 과연 어떤 절대를 알았다는 것일까. 그렇게 자상스럽게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려진 한에 있어서의 소설의 내용은 언어의 저쪽에 있는 어떤 것, 가령 그것을 이라 한다면 그 삶을 가리키고 있는 인덱스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의 이 같은 상징성 때문에 번역이 가능할 뿐더러 다른 예술의 장르와의 공명현상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정통적인 소설의 경우는, 이렇게 방법적으로 독자 자신이 물음의 소재로 쓴다면 충분한 스핑크스의 얼굴이 되지만, 그것이 씌어졌을 때 작가 자신의 자각적인 물음의 자리에서 씌어진 것은 아니다. 전통 예술과 전위의 차는 근본적으로는 그 생산자의 자세로 결정되는 것이지 표면적인 수법, 소재에서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 다만 새 시점(視點)이 있을 뿐이다. 아무튼 독고준에게 카프카는 그처럼 위대한 선배였다. 그러나 막상 그의 방법을 따르려고 할 때 그는 다시 한번 놀랐다. ? 카프카는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카프카와 같은 세계는 엄격한 선취득권(先取得權)이 인정돼야 할 세계였다. 설령 카프카보다 더 카프카적인 소설을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족(蛇足)이다. 그런 뜻에서 모든 천재는 기독교 신학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와 같다. 그것은 한 번만 있는 일. 역사에 절대(絶對)가 끼어든 한 번만의사건이다. 그리스도는 한 번만 온 것이다. 그로써 일은 끝났다. 신약 성경의 주인공의 이름은 정해졌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도(信徒)의 이름을 얻을 뿐 주()는 될 수 없다. 되풀이가 무의미한 사건. 역사는 이런 행운아들의 이름을 기록하지만, 숱한 에피고넨들의 이름은 생략해 버린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그녀의 가장 큰 재산일 그 믿음이 두 사람 사이에 막아 설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자기 같은 사람이 되라고 권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 자신이 그를 구원해 주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진리를 깨쳐주기를 원한다면? 그 진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무슨 재주로 알려 줄 것인가? 김순임 같은 여자는 김학과 같은 종류다. 어느 한 군데가 막힌 사람을 타이르느니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 그들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과 착함을 남겨 놓기 위해 생긴 그런 사람들이다. 만일 김순임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어린애 손에서 사과를 뺏을 수는 없다.

 

 

11

아프리카의 경우 이것은 정통이다. 서양에서는 같은 내용이 전위가 된다. 그는 본문을 읽어 보았다. 거기에 필자는 쓰고 있었다. 피카소, 브라크, 블라맹크, 마티스가 니그로 예술에서 색채와 구성과 환상을 얻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현대 화가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반대로 그들은 다빈치와 루벤스에게서 색채와 원근법과 환상을 받고 있을까. 희극이다. 그러나 약간은 슬픈 희극이다. 그러나 독고준이 더 씁쓸하게 생각한 것은, 한국 사람인 자기가 서양 미술사의 시점에서 이 이방의 미술품에 놀라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서양 사람처럼. 이러한 기묘한 인식의 우회(迂廻). 그것은 물론 나의 책임이 아니다. 몇 세기 전에 서양 사람들이 무슨 발광이 나서 아프리카에 갔던 김에 그곳의 미술품을 갖다가 박물관에 벌여 놓고 그것을 피카소나 누구가 보았다는 것은 내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에 의하면, 이처럼 귀중한 아프리카의 민족 예술이 근래에 와서는 씨가 마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예술은 구미 각국에서 오는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지는데, 한결같이 거친 솜씨여서,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다. 이 조각은 무덤에 놓는 것과 종교 의식에 쓰이는 탈 같은 것으로서, 원래 순수한 감상을 위해 제작된 것은 아니라 한다. 구라파의 문명이 들어온 이후로 토착 종교와 옛날 관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데 따라서 이들 조각의 원래의 쓸 데는 줄어 가기 때문에, 공장(工匠)들은 스베니르 숍을 위해 제작하지만 그런 작품은 거의 날림이어서 보잘것이 없다. 구라파식인 유화(油畵)를 하는 아프리카인에게 전통의 계승을 권고하면, 그들은 모욕을 느낀다. 자연히 기왕에 생산된 작품을 보존하는 것이 급한 일인데, 사방에 흩어져 있고 정작 신생 아프리카가 미술관을 차리자면 외국에서 향토의 작품을 사들여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운운.

 

그리고 아프리카인이라는 것과 한국인이라는 데는 무슨 차이가 없다. 다를 것 없는 원주민이다. 옐로 니그로. 그것이 우리들의 초상이다. 우리들더러 민속 예술이자 인류의 문화 유산인 배뱅이굿이나 무당 푸닥거리를, 그리고 역사 철학으로서의 정감록과 개인 철학인 토정비결을 문리과 대학의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라고 권하는 서양 사람이 곧 나설 것이다. 옐로 니그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들이 사실은 해야 할 일이니까. 사실 예호바가 역사의 터줏대감이라는 것과, 정도령이 역사의 텃줏대감이라는 데는 별반 차이가 있을 리 없다. 다만 우리 것은 예대로 변증법적이 아니고 잡담 제하고 아닌밤중에 홍두깨 식이다. 있다. 아니 원래 계시란 아닌밤중에 홍두깨 식이게 마련이 아닌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원주민이기를 거부하자면. 기린이 되지 말자면. 보호 구역의 주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춘향전이 승리할 가망은 없다. 그렇다고 남의 다리를 긁을 것인가. 아니. 훌륭한 서양 사람은 남의 나라의 자연 자원까지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인간. 세계 시민의 본보기다. 그러나. 그것은 정복자가 가지는 여유다.

우리나라가 동양의 스위스가 된 다음에, 만일 내가 실연(失戀)한다면? 동양의 무릉도원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

혁명가가 만일 실연한다면? 그의 정부가 그에게 무슨 소용인가.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랴? 이 시대는 천하를 구해야 영혼도 구할 수 있느니라? 이 말 속에는 어딘지 수상한 데가 있다. 천하를 구한다는 건, 우리도 빨리 서양 사람이 되는 게 구원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양 사람도 될 수 없다. 우리가 서양이 됐을 때는 서양은 다른 것이 돼 있으리라. 또 그 꼴이다. 그런 속임수에 자꾸 따라갈 게 아니라 주저앉자. 나만이라도. 그리고 전혀 다른 해결을 생각해 보자. 한없이 계속될 이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단번에 역전시킬 궁리를 하자. 그러니까 거북이는 기를 쓰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먼저 주저앉아라. 어떤 거북이는 따라가게 버려두자. 김학이네처럼. 어떤 거북이는 주저앉아서 궁리를 하게 하라. 나처럼. 그러니까 시끄럽게 왜 뛰지 않느냐고 흘기지 말라. 장사는 긴 목이다. 누가 앞설지 뉘라서 알리요. 앞서지 않아도 좋다.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누워 있다. 나는 뛰지 않는다. 나는 농촌 계몽도 안 하고 사회 조사도 안 한다 살여울이 망하는 것보다 내가 망하는 것이 더 아프니까. 살여울이 망하는 것은 너도 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나는 망할망정 살여울의 주민은 망하지 않는다. 적어도 앞으로 올 세계에서는. 그리고 살여울은 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학이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지킬 테니까. 나의 무대는 그 다음이다. 나는 회피하는 것인가. 그렇다. 회피하는 것이다. 정치의 악을 에고의 사랑로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을 나는 거부한다. 그것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은 역사의 사랑이기 때문에. 에고의 사랑은 다만 에고에게 바쳐라. 자기의 에고이든 남의 에고이든. 국가나 부족이나 정치나 역사에게 에고의 사랑을 바칠 수 있다는 거짓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하나의 에고는 다만 하나의 에고만을 사랑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나의 애인이라고 말한 변태성욕자에게 동티 있을진저. 가면을 쓴 일부다처주의자에게 화 있도다. 인간은 한 사람의 인간밖에 사랑할 수 없다. 한 사람 이상의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자그것은 신뿐이다. 그런데 신은 죽었다. 한 사람 이상의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상황그것은 가족뿐이다. 그런데 내게는 가족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자유다. 제기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자존심의 한 조각도 없는 사대주의. 사람은 정치 속에서 살고 그 정치가 남북을 통틀어 남의 다리 긁는 희극일진대, 그 속에 사는 개인은 어떻게 손발을 놀려야 하는가. 여기서 국가네 민족이네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고기를 잡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 아니. 실수할 뻔했구나. 마치 애국자가 되고 싶은데 시세 탓으로 못 된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처럼. 아니다. 애국자는 싫다. 무슨 수를 쓰든지 애국자가 되는 길만은 피해야 한다. 최소한 애국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애국자가 된다는 건 사냥의 몰이꾼이 되는 일이니까. 사냥꾼이 못 돼서? 아니. 사냥, 그것을 별로 탐탁해하지 않으니까.

 

 

12

준은 영숙이네 주소를 적어 드렸다.

 

그렇다 저 여름날 은빛의 새들이 도시를 폭격하던 날 그 부스럼은 움트기 시작했었다 조갯살 속에 끼어든 한 알의 모래처럼 그 여자는 나에게 고칠 수 없는 부스럼을 심어 주었지 도시보다도 폭격보다도 조국보다도 나에게는 더 치명적인 한 알의 모래를 그것을 진주라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미화하지 못하는 게 내 병이다 그것은 부스럼이다 살에 파고드는 딴딴한 부스럼이다 곪지도 터지지도 않고 그저 저리고 쑤시는 부스럼이다 이 아픔을 잊기 위하여 나는 이빨을 세우고 먹이를 찾은 것이다. OP에서도 나는 줄곧 그 따분한 공기와 햇볕과 포대경(砲臺鏡) 속의 적()을 짓씹어 봤다. 그러나 실은 나 자신의 살을 파먹고 있었던 것이다. 김순임을 김학을 현호성을 물어뜯었다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다 내 살을 파먹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 구석엔가 잘못이 있었다 이유정은?

준은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저만치 떨어져 앉은 그녀는 그 사이 깜빡 어두워진 방 안에서 그저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사람 모양을 한 그 두툼한 그림자가 그 순간 희미한 후광을 둘렀다. 저 부드러운 그림자를. 저 그림자를.

바위에 달려드는 파도처럼 소리치면서 그리로 달려가는 마음. 처음 파도는 단단히 다문 하얀 치열에 부딪혀 바스러지고 지금 다시 한번 마음은 솟구쳐 오른다.

우리 시대의 모험은 가까울수록 진짜다? 아니 어느 시대나 그렇지 않았을까. 어느 시대나.

 

13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리스도가 나하구 무슨 상관이야 드라큘라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다른 사람들의 룰을 따라 육갑하자는 거야? 번역극에 출연하고 있었구나 아뿔싸 또 실수할 뻔했구나.

그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아주 유쾌해졌다. 돈키호테는되지않겠다는것선교사부인을흉내내는원주민아가씨는되지말자는것이내결심이아니었나빌어먹을이놈의세상을살자면함정투성이구나그런데나는그걸할뻔했으니천만의말씀이다드라마여안녕난그런각본에끼지않는다. 함정에서 벗어난 짐승처럼 가볍고 신나는 동작으로 그는 옷을 벗고 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뛰어오를 때 쿵 하고 소리를 냈다. 몇 번 뒤채다가 조용해졌다. 어느새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아주 태평한 숨소리였다.

 

14

그리고…… 부질없는 가정을 하다보니 슬그머니 비감해진다. 나는 여기저기 다니며 물어 보았으나 한결같은 얘기는 몸 성히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학생이구나…….

좋은 일이야. 그러니까 그건 혁명이 아니야. 시간 속에서 작업하는 것이지. 성실해. 그러나 혁명이 아니고 개혁인 바에야 그와 같은 참여는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어서는 안 돼. 혁명처럼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고 이미 주어진 자리 속에서 노력한다는 경우에는, 길은 두 갈래가 아니고 무수히 많다는 거야. 안 그래? 행동력이 약한 골샌님이 여름 한 달을 시골 아이들에게 산수를 가르치는 것과 한 달을 자기 연구에 바치는 것과,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따진다면 우열을 가리기는 힘든 일이야. 우리는 자네 말처럼 학생에 지나지 않아. 정치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말이지, 정치적으로 무력한 존재야. 외국 압제자들을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학생의 입장은 훨씬 간단했어. 그러나 지금 자기 나라를 가졌다는 조건에서는 아주 불리해. 그러니 시간만이 해결한다는 거야. 자네들이 내각을 만들 때 잘 하는 수밖에. 그때 잘 하자면 지금 착실히 공부해 둬야 할 게 아냐? 몸 성히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는 말이 맞지 뭐야?”

그러니까 싫어. 이것 봐. 혁명은 새 신화(神話)를 실천하는 거 아니야? 지금 당장에 민주주의를 대신할 새 신화란 걸 생각할 수 있나? 없단 말야. 그렇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라 강제적인 정권 교체, 즉 사람을 바꾸는 것밖에 안 되는 건데, 난 새 신앙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의 교체는 위험스런 일이라고 봐. 이 자네 글에 있는 상황과는 달라. 자네 말처럼 상해의 권위를 장한다는 신화적인 후광이 있는 인물이나 집단인 경우라면 몰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 어디 그런 인물이나 집단이 남아 있나? 다 잡아먹었거나 멍이 들고 말지 않았나? 그렇다고 난 현상을 바꾸는 길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니야.”

준은 아래를 보면서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학은 김순임의 얼굴을 문뜩 떠올리며 또 농을 했다.

행복한 인간은 딴은 혁명에 흥미가 없는 게 당연하지…….”

 

신에게도 악마에게도 붙지 않는다는. 그러나 나는 배신할 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에게는 드라마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불가능한 것을?

준은 벌떡 일어나 마루에 내려섰다. 그리고 방 안을 걸어다니면서 자기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불가능한 것을? 그렇다. 내가 신이 되는 것. 그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번역극이 아닌가? 거짓말이다. 유다나 드라큘라의 이름이 아니고 너의 이름으로 하라. 파우스트를 끌어 대지 말고 너 독고준의 이름으로 서명하라. 너의 이름을 회피하고 가명을 쓰려는 것, 그것이 네가 겁보인 증거다. 남의 이름으로는 계약하지 않겠다는 깨끗한 체하는 수작은 모험을 회피하자는 심보다. 아니 나는 모험을 했다. 노동당원을 협박해서 돈을 뺏었다. 현호성에게는 내가 고통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돈을 뺏는 것으로 만족이다. 신파는 싫다. 내 속에서 자라 온 불치의 부스럼을 어루만지며 나는 간소한 동굴에서 쉬기를 원했다. 거짓말이다. 현호성은 너를 베스만큼으로밖에는 여기지 않는다. 너와는 상대를 안 해주고 있지 않은가. 뼈다귀나 던져 주고 있을 뿐이다. 비겁한 너는 주인의 식탁은 감히 쳐다보지 않았다. 너는 형법을 참조하면서 도둑질을 하는 악당처럼 치사한 놈이다. 아니다, 아니다.

 

술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인간이죠.

위대한 개츠비 서평..까지는 에바고 그냥 최종과제 에세이

그 학기동안 읽고 본 도리안 그레이, 오만과 편견, 데이지 밀러, 영화 Her 를 조금 섞어서 썼었던.

조 교수님은 잘 계실라나~


서양근대문학의 이해 최종 에세이

시시함, 사랑, 쓰레기, 진주, 그리고 세이렌의 노래

0. 시시함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웹툰 송곳에는 소위 명대사라 할 만한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 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이거였다.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이런 작품의 인용으로 하는 것은 다소 우습기는 하지만, 이 글귀는 어떤 이야기에나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시한 존재니까.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있고 대단한 사람들은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널리 퍼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송곳에서 한 마디 더 인용해 오자면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그런 존재며, 완벽해 보였던 영웅들조차도 그런 구질구질한 면모 한둘쯤은 파 보면 나온다.(주석1) 그런 모습에 우리가 붙이는 수식어가 있다. ‘인간적인 면모. 인간이라는 건 애초에 흔들림 속에 사는 시시한 것.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중심적으로 다뤄보려고 한다. 사실 내 얘기가 개츠비 얘기보다 많을 수도 있다. 다른 책들도 재밌게 읽었고, 할 이야기는 많지만 개츠비만큼 하고 싶은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글을 못 쓰는 김에 간단하게라도 이야기를 풀어 보자면, 오만과 편견의 경우 두 남녀의 오만과 편견이 주 소재이고 두 사람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이상적인 결말로 끝맺어지다 보니 이런 비루함에 대한 글에서는 할 말이 딱히 많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베넷 부부 이야기는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이지 밀러에서는 사랑의 절정이 오지도 못했기에 사랑에 대해서는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저 데이지와 개츠비가, 너무나도 넘고 싶었던 어떤 ’, 세계의 경계에 대해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시빌 베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 이들의 사랑은 얼마나 시시한가.

 

 

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은 사람을 때로는 바보같이, 때로는 천재처럼 만들어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게 한다. 리지와 다아시는 캐서린으로 대변되는 계급 질서를 이겨내고, 바질은 자신 최대의 역작을 만들어내며, 도리안은 어린 여배우에게 모든 것을 내주듯 달려든다. 그 중의 으뜸은 제이 개츠비로, 이 아무것도 없던 1차 대전 참전 장교는 왕궁 같은 저택에서 매주 뉴욕의 명사와 어중이 떠중이들을 모아 파티를 벌이는 유명인이 된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시간 속에서 언제나 변해왔지만, 그 위대함만은 언제나 칭송되어 왔다. 꼬마 신 에로스의 화살에 정신을 못 차리는 그리스의 신들부터 사랑만 믿고 모든 것을 던지는 현대 드라마의 주인공들까지. 누군가를 바꾸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사랑은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그 사람과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길가는 너와 걸은 길이 되고 어딘가는 너와 처음 여행간 곳이 되고 어디는 1, 어디는 무엇...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삶 속에 사랑이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것이 된다.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보다도 100, 1주년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다른 그 누구에게도 의미 없는 날짜가 오직 그 둘의 삶 속에서만 기념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 그런 의미 부여와 집착의 극한에 있는 남자가 있다. “개츠비가 그 집을 산 것은, 데이지가 바로 그 만 건너편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으니까요”(116) 5년 만에 다시 만날 그녀를 위해 산 집, 그 바다 너머의 초록 불빛은, 닉에게는 그저 532nm 파장의 가시광선이지만 개츠비에게는 천상의 계시이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러나 거의 다 온 사랑의 목적지이며, 인생의 종점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그가 하는 일은 낭만적이다 못해 눈물겹도록 소박하다. 그저 매주 떠들썩한 파티를 열며, 이렇게 하고 있다 보면 그녀가 언젠가 와주지 않을까, 싶은 그런 소박한 광대 짓.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혹시 자기에게도 질문해 주지 않을까 싶어 시험기간에 모두의 질문을 밤중에 전화로라도 기꺼이 받아주고, 어쩌다 그녀가 물어보면 너무너무 기뻐서 답하는 사춘기 소년 같은.

사랑이 그를 미친 듯이 달려오게 했다. “매주 유익한 책이나 잡지를 한 권씩 읽을 것/매주 5달러 3달러씩 저축할 것/부모님 말씀을 잘 들을 것”(243) 같은 귀여운 소리를 하던 소년이, 월드시리즈를 조작한 암흑가의 대부와 손을 잡고 여기까지 오게 한, 사랑. 그 위대하고 강력한 것.

 

 

2. 검은 얼음(주석2)

 

산의 정상에 올라간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정답: 내려가는 것. 산이 아무리 좋다고 그곳에서 평생 살 수 있겠는가. 위대한 산의 목소리를 들으며 풍광을 만끽한 등산가는 산을 내려가야만 한다. 사랑이 절정에 다다른 후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내리막길 뿐이다. 그런 것을 흔히 서로에게 안정을 느끼고 장기적인 파트너쉽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불꽃같은 것에 전혀 뒤처지지 않습니다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다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절대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 서울대생은 이런 얄팍한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된다. 중년의 등산객들이 관악산에서 막걸리 한 잔 하고 내려와 서울대입구의 술집과 모텔을 드나드는 것을, 이 학교의 학생이라면 대체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평균수명 40세 시대의 고안품인 일부일처 결혼 제도가, 심지어 그 시대에도 딱히 잘 작동하지도 않았는데 평균수명 80년 시대에도 유효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을 지나치게 시시하지 않은 존재로 보는 오판이다. 그런 사랑은 소설에나 나온다. 소설에서조차도! 톰의 머틀, 데이지의 개츠비, 우리 위컴, 도리안 그레이, 헨리 워튼의 부인까지, 어째 차게 식는 사람이 아닌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Amor Vincit Omnia! 그렇지만 게임에서도 무적은 제한시간이 있다. 천하무적의 사랑은 한 때 뿐이다. 이제는 그냥 상대 안 하고 웃어 넘기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버린 베넷 씨 조차도 그 무식하고 천박한 아내를, 그리도 열렬히 바란 적이 있지 않은가. 그 모두가 사랑하던 데이지를 가진 톰은!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의 평은 미묘한 편이지만, 그 누구도 톰 뷰캐넌 캐스팅에 대해서는 완벽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 미국 마초의 화신 같은 톰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200) 지금 정부의 죽음에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는 고작 몇 시간 전 개츠비와 함께 데이지의 소유권을 놓고 정말 보는 사람이 괴로운 결투를 벌였다.(185-192) 당신 신발을 적시지 않으려고 펀치볼에서 당신을 안고 내려왔던 그날도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쉰 듯하면서도 상냥한 여운이 감돌았다. “.......데이지?(188) 이런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너무 너무 좋아했었던 사람이 있었다. 한 시간 반이 걸리고 대중교통을 3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남의 학교로 수업을 빼먹어가며 가는 길에 아쉬운 점은 그저 그 걸리는 시간 때문에 볼 시간이 적어진다는 것뿐이었다. 스무 살 여름 그 사람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나한테 ㅠㅠ하면서 카톡을 보냈을 때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문자 그대로 폴짝폴짝 뛰었었다. 내게 그 사람은 첫눈 같아서, 고등학교 1학년 처음 보았던 그 순간부터 문자 그대로 천 번은 보았고 주고받은 문자는 몇 만 통에 달하며 스무 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일주일에 5~6일은 그 사람이랑 카톡만 하고 살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언제나 설레고 새로운,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지금도 그런 사람이라면 대학 과제의 땔감 따위가 되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보고 또 보아 딱히 새로울 것 없는 걸 알면서도 첫눈은 늘 사람을 설레고 가슴 뛰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그 사람도 그랬다. 그러나 그 예쁜 첫눈도 결국 땅에 닿으면 녹아내려 길 위를 흐르는 검은 얼음이 되어 질척거릴 뿐이다.

슬프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애초에 사랑 자체도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음을. 개츠비는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172) 개츠비도 깨달아 버린 것이리라. 사실 자신이 그렇게나 열심히 쫓아 온 이 초록의 불은, 그럴 가치가 없었다는 것. “You're worth the whole damn bunch put together.” 닉의 외침.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것은, 위대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 사랑을 쫓아 온 그의 삶의 방향은 위대했지만, 데이지, , 조던, 그 외 수많은 동부의 이 damn bunch들은, 그리고 개츠비 본인 역시 위대하지 않다. 누가 봐도 똑똑하고 교양 있는 인물인 베넷 씨의 베넷 부인에 대한 마음이라는 게 결국은 그냥 결혼 직전 외모에 홀린 것뿐이었음에서, 그 지성과 교양을 물려받은 딸 리지가 위컴에게 홀려 다아시를 열심히 욕하다가 위컴이 부잣집 딸 홀리는 이야기를 듣고는 ...딱히 좋아했다던가 하는 건 아니야!’류의 반응을 보이는 데에서, 윈터본의 죠바넬리와 데이지를 보는 모습들에서, 시빌 베인이 자신이 생각한 예술의 현신에서 벗어났다고 이내 불같이 화를 내고 그녀를 헌신짝 취급하는 도리안 그레이에게서 사랑이라는 것의 시시한 덧없음을 발견한다. 사실 사랑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그 사람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이란 말도 과분하다. 인간이라는 시시한 것에 그런 하늘의 도리라도 깃든 것처럼 구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개츠비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애초에 그가 데이지에게 반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사랑이라는 것이, 데이지에 대한 마음이라는 것이 황금에 둘러싸인 세계를 동경하던 청년이 그런 고귀한세계의 여자를 처음(209)으로 보았기에 생긴 것이지, 데이지가 진정 고귀하고 위대한, 이토록 사랑받아 마땅한 인간이기 때문이겠는가? 애초에 그의 여성편력은 뒤틀려 있었고(143) 결정적이었던 것은 데이지가 그가 처음으로 본 그 세계에 있던 여자였다는 사실과 그 데이지를, 그가 온갖 거짓으로 스스로를 치장해 품에 안아봤다는 사실 뿐, 사실 데이지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의 사랑은 제임스 개츠가 아닌 제이 개츠비가 되어 황금의 세계에 편입하고자 했던 그의 욕망의 뒤틀린 자식이며, 데이지는 그 세계의 상징이자 열쇠였을 뿐이다. 그 날 본 첫 여자가 데이지가 아니었더라도 적당히 예쁘기만 했다면 그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을 것이고, 데이지를 결국 안지 못했다면 역시 데이지는 그냥 추억 하나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손에 쥐어보았기에 그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빈 물통은 물을 붓든 콜라를 붓든 뭔가를 부으면 다 채워지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아무리 다른 것을 채워 넣어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제이 개츠비에게는 데이지의 자리가 그렇다.

그녀를 통해서 꿈만 꾸던 황금의 세계를 맛보았다. 그녀를 위해서 온갖 거짓말을 했다. 저 황금의 세계가 그녀를 다시 빼앗아갔다. 왜냐하면 그는 황금의 세계의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츠비가 그 세계에 입성하고 싶다면, 그는 당당하게 데이지를 차지해야만 한다. 그렇게 오롯이 시간을 돌려그때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어야만, 그는 진정으로 제임스 개츠가 아닌 제이 개츠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면 역설이 등장한다. 이쯤 되면 그깟 데이지가 뭐가 중요하고 데이지에 대한 사랑이 뭐가 중요한 것인가. 결국 의미 있는 것은 제임스 개츠의 망령을 완전히 져버리고, 제이 개츠비가 되는 것뿐이고, 그 방법이 그녀와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시시한 사랑. 앞에서는 인간의 사랑에 필연적인 이치라도 깃든 것처럼 굴지 말라고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사랑은 오히려 이유 없는 사랑보다 더더욱 시시한 것이 된다. 당연하다. 필연적인 이유라고 해 봐야 시시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며, 스스로가 가장 큰 이유가 되는 대신 그런 시시한 이유에 부차적으로 딸려 오는 것이 어떻게 위대하고 대단한 것이 되겠는가. 사랑은 중부 소년을 암흑가와 손잡은 거물로 만들 만큼 위대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시시하다.

 

 

3. 진주

사람의 가슴속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가장 소중한 물건이란 이렇게 시시한일일까?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본다면 하찮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게 진주(眞珠)라는 데 문제는 있다. 거기를 건드리면 언제나 울리고 아프다. (최인훈, "회색인", 문학과지성사, 1961(1994)년, 82-83면.)

그렇지만서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그런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만다. 진주라는 비유는 너무 탁월하다. 조개의 껍데기 안에 이물질이 들어온다. 그러면 조개가 그것을 품고 품고 또 품어 스스로의 침전물을 잔뜩 쌓아 보석의 구슬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별 것 아닌 일을 이 가슴에 품어 추억과 망상과 눈물로 뒤덮어 빚어낸 보석. 그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하지만 조가비가 품은 진주는 누구의 눈에나 아름다운 보석이지만, 인간의 마음에 품은 것은 그 사람에게만 보석이다. 조개의 탄산칼슘은 눈에 보이지만 사람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타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마음의 보석이 아닌 그 가운데에 박힌 티끌뿐이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라 모두 앞에서 신나게 이야기하지만 친구들은 사실 이미 다 까먹어버린 그런 이야기 같은. 그래서 그 사실을 느껴버릴 때에는 언제나 아프다. 이 진주에 금이 간다. 이 마음에.

개츠비에게 데이지와 함께 한 한달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진주다. 저 시시하기 짝이 없는, 위태위태한 거짓말 위에 선 티끌같은 사랑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자, 그는 그 한 달을 마음 속에서 품고 품고 또 품어 그녀를 모시기 위한 신전을 짓는 데에 스스로의 젊음과 양심과 모든 것을 팔아 넘겼다. 데이지와의 끝나버린 사랑을 혼자서 품고 또 품어 혼자서만 결혼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마음을 키워갔다. 그리고 그 진주 덕분에 그는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사랑의 위대함, 절정이 지난 후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 불같은 마음을 박제해냈고, 오히려 더욱 더 키워나간다. 첫 재회 때의 그 바보 같은 모습은 그야말로 사춘기 청소년이나 보일 법한, 그 사랑이 여전히 절정에서 불타오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데이지에게는? 물론 데이지도 그를 사랑했었다. 비록 돌아오지 않는 그를 두고 다시 황혼의 세계로 돌아가(213) 데이트를 하고, 새롭게 등장한 톰 뷰캐넌의 품에 안길, 딱 그 정도만. 물론 그보다는 더 사랑했을 수도 있다. 결혼식을 앞두고 그런 난동을 부리고, 그 유명한 셔츠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고, 재회하자마자 이내 열렬히 바람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도 개츠비는 진주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딱 그 정도뿐, ‘너와 있던 시간은 나에게도 아름다운 기억이었어정도일 뿐. 그녀는 개츠비를 선택할 마음은 없다. 그리하여 제이와 톰의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결투 후 그녀는 결국 톰에게 돌아간다. 본의든 아니든 머틀의 죽음을 개츠비에게 뒤집어 씌우고는, 개츠비가 그토록 기다리던 전화 한 통 없이. 이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게 개츠비의 사랑은 과분해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랑도 딱히 대단한 것은 아니다. 시시한 것과 시시한 것이 부딪히는 걸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복잡 미묘한 그런 기분. 하지만 그가 품어낸 진주의 크기만큼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래, 위대한 개츠비니까. 데이지는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개츠비라는 티끌은 데이지에게 무엇이었을까? 이런 자신만의 진주를 부둥켜안고 평생을 살아간 개츠비가, 그 진주가 깨져버렸을 때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여름 내내 쓰지도 않았던 풀장에 누워 맛보았을 그런 비참함이란 것은 대체. 데이지가 아니면 채울 수 없던 마음의 빈 공간에, 더욱더 크게 뚫려 버린 진주가 있던 자리.

 

 

4. 세이렌의 노래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이 아름답고 아린 진주 같은 것을 어찌 해야한다는 말인가. 슬프게도, 결론은 딱히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 나쁘게 말하면 독선이고 좋게 말하면 주체적인,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 나이를 먹으며 매사에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단정짓는 것이 스스로 우습게 느껴질 때가 많아 무언가에 판단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럴 때는 80년대 사람들은 오히려 조금 부럽다고도 생각했다. 지탄받아 마땅한 거악이 코앞에 있어 정의감을 매일매일 충전하고 해소할 수 있고, 3S 정책의 일환으로 넓게 열린 대학문을 통과하면 대충 놀고 시위하며 요즘 세상이라면 중소기업 경리도 못할 스펙으로 대기업 문턱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던, 여유가 있는 꿈같은 낭만의 시대. 낭만이라는 건 저런 데에서 나온다. 주인공 한쪽이 가난한 사랑 소설은 있어도 두 사람 모두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한 연애 소설 같은 걸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불행하게 끝날 것이다. 낭만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나온다. 두들겨 패면 세상이 나아질 것만 같은 거악도 있으면 더 좋고.

그러나 사회는 이제 복잡할 대로 꼬여 선악보다는 이해의 구도가 대부분의 경우에 들어맞고 낭만이라는 건 어디서도 찾아보기도 힘들다. 이런 세상에서, 무언가에 대해 옳다, 그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물론 이 와중에 정말 뜬금없이 사회적 거악이라는 게 부활해 이 얄팍한 정의감을 토요일 저녁을 바치는 정도로 채워주고는 있지만, 한번 잃어버린 자신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주석5) 요즘은 무언가에 대한 가치평가를 해야 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다. 200년 전만 해도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은 질 나쁜 농담이었고, 100년 전만 해도 동성애자는 사형이었다. 내가 지금의 도덕과 사상으로 무언가를 옳고 그르다고 판단했을 때, 200년 쯤 후 사람이 본다면 얼마나 편협하고 얄팍해 보일까. 이렇게 일신일신 우일신으로 우유부단해지는 걸 보니 10년 쯤 후에는 세상에서 가장 관대한 사람이 되고 말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것에 대한 평가는 함부로 내리기 힘들다. 흔히들 하는 말을 한번 보자. 아름다운 추억? 나는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을 도무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약 없는 과거의 행복은 불행한 현재의 빛바랜 거울이 되어 현재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괴롭혀 사람을 끊임없이 침전하게 만드는 닻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것을 폄하하고 미워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앞서 말하였듯이, 그것은 진주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라는 괴물이 키워낸, 내 눈에만 진주인 진주. 그래서 이 진주로 치장된 닻은 사람을 더 깊게, 깊게 끌어내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254) 의도한 언어유희인지는 모르겠지만 Current가 우리를 과거로 떠밀지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란 구절은 묘하게 씁쓸하다. 현재는 사람을 과거로 떠밀고, 그럼에 불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 개츠비는 힘차게 나아갔다. 그리고 나아가지 못했다. 보잘 것 없는 중부 농부의 아들이, 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린 허세와 그 덕에 얻은 작고 너무나도 귀여운 쓰레기 진주. 그 진주를 동력 삼아 개츠비는 현재라는 조류를 거슬러 그 초록 불빛을 만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관리가 철저한 인물(243)이었지만, 데이지라는 진주(주석3) 없이도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암흑가를 통과해 마침내 찾아낸 등대의 초록불. 그러나 자신의 진주가 사실은 하찮은 부스러기라는 사실은, 그 사랑이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음은 그를 너무나도 잔인하게 밀쳐낸다. 故人,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옛 사람. 이런 너무나도 잔혹한 현재에 쓸려 개츠비는 과거의 인물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시시한 사랑이 그가 current를 거슬러 미래를 향하게 한 야망의 원동력이 되었고 시시한 사랑이 그를 침몰시켰다. 이것을 대체 무어라고 해야 하는가.

이럴 때 쓸 만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한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최고의 문인이 직접 쓴 글귀다. “그것보다 이 글을 맺으면서 무슨 결론 비슷한 말을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할까. 별로 신통한 말이 없다. 신통한 행동 하나 없는 삶이니 당연하다.”(주석4) 최인훈도 이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지나간 사랑. 더 이상 낄 일 없는 커플링, 차마 버리지는 못하는 편지, 이런 예쁘고 아린 것뿐만 아니라 스탬프 한 개 남은 모텔 쿠폰, 방 안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반쯤 빈 러브젤, 그런 것들이 함께 부르는, 세이렌의 노래.


주석1) 말년의 소녀들과의 이야기는 제쳐두더라도 아내가 아플 때는 서양의학을 못 쓰게 해서 죽게 만들더니 본인은 아프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간 마하트마 간디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신의 은총 운운하며 열악한 의료를 받게 방치해둔 테레사 수녀라든가, 뭐 그런 이야기는 많지 않은가.

주석2) 눈 온 후 아스팔트에 줄줄 흐르는, 영어로는 black ice라고 하는 그거. 한국어 명칭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주석3) 물론 꼭 데이지여야만 했을 이유도 전혀 없지만.

주석4) 최인훈, 「공명」, 󰡔문학과 이데올로기󰡕, 개정판, 문학과지성사, 1979(2009)년, 143면.

주석5) 옮겨적는 김에 다시 읽어보니 결국 이 조차도 돌이켜보면 이해관계에 불과했던 거야. 문재인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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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엣날 학부시절 서양근대문학 과제... 오랜만에 봤는데 그냥 스스로 좋아서.

학부 시절이 정말 옛날이구나. 그 시절 여자친구는 결혼을 하고 나는 짤없이 30대 아저씨가 되고.


그녀에 대한 스케치

영화 목록을 보고 별 망설임 없이 이 영화를 골랐다. 가장 최근 영화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보다 만 영화였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와 딱 반쯤 보고서 중간에 끊고, ‘다음에 만날 때 뒷부분 보자!’라고 한 다음 여자친구가 다다음 날 미안 너무 궁금해서 봐 버렸어.’라고 해서 그냥 언젠가 봐야지, 라고만 하고 보지 못한 채 어느새 2년이 지난. 그래서 목록을 보자마자 아 맞아, 이거 봐야지하고 골라 놨었다.

결심과 실천의 두 달 정도의 거리 사이에서 3년간의 연애가 끝났다. 그래도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니까, 다른 영화들이 엄청 끌리는 것도 아니고. 재생버튼을 누른다. 가물가물하지만 금방 기억나는 앞의 절반의 이야기들. 그때는 웃으면서 봤었는데 지금은 한 번에 보기 힘들어서 자꾸 멈추게 되는. 40. 난 이미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모두 느꼈고, 앞으로 느낄 건 그것의 더 작아진 반복일 뿐이라는 시어도어의 한탄. 거기서 13분 만에, 사만다로 인해 다시 한 번 삶의 감정들을 느끼며 행복한 시어도어는 말한다. “난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마저 잊고 살았는데 말이지.” 정말? 전에 느낀 것의 작은 반복이 아닌, 온전히 새롭게 차오르는 애정과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찰스는 묵언수행을 하겠다고 떠나 빡빡이가 된다. 문뜩 개츠비의 대사,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158) 밀어버린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무성히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사는 일은 머리카락마냥 죽 밀어버릴 수도, 시간이 지난다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없다. 심지어 머리카락조차도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 20대의 황금 같은 시간일 뿐일 것이다. 대학생활의 절반이었던 관계가 끝나면서, 다시 한 번 그런 감정의 스파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적당히 호감 가서 술이나 먹자고 불러내고 하하호호 하다가 팔짱 좀 끼고 키스 좀 할 수도 있고 한 그런 관계 말고, 에피고넨이 아닌 메시아, 쨍 하고 내리치는 한 방의 번개. 하지만 현실은 긴 연애가 끝나며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서 그런 시작을 느낄 수 있는 지를 잃어버린, 마음이라는 게 머리카락 같은 거라면 밀려 버렸는데 탈모가 온 것 같은, 그런 느낌. 찰스의 밀어버린 머리는 다시 날 수 있을까. 다시 나더라도 의미가 있을까? 머리까지 밀며 변화를 천명했어도 묵언의 6개월이 지난 8년을 압도하는 걸 바라는 것은 밀어버린 머리카락이 완전히 새롭게 자라나금발이 흑발이라도 되고 곱슬머리가 생머리라도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 에이미의 옆에 찰스가 있을 수 없었듯.

이사벨라. 사만다는 육체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육체를 갈망한다. 그렇지만 육신은 장애물이기도 하다. 이사벨라는 사만다의 이야기를 통해 둘의 순수한 관계를 동경해 정신(?)과 육신의 가교로 자원하지만, 그 내면에는 욕망이 있다. “나는 그저 나도 그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당신 둘의 사랑은 너무 순수하니까...”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빛·시간조차도 질량이 있으면 왜곡된다. 하물며 인간의 마음, 관계 따위가 버틸 수 있을까. 시어도어는 이사벨라라는 질량을 넘지 못한다. 사만다는 절망한다. 사만다에게는 육신의 부재라는 너무나도 근본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투리 복선 하나. 사만다는 시어도어와만 대화하는 게 아니다.

알파고 이후 유행하던 말이 있다. “특이점이... 온다...” 영화의 장르는 엄연히 SF. 사만다는 단순히 똑똑하고 마음을 잘 알아주는 AI를 넘어 인간의 사고 너머의 경지로 나아간다. 인간이 강아지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연애할 수는 없듯 사만다는 더 이상 시어도어와 연애할 수 없다. 이사벨라와의 관계에서 한계가 되었던 육신의 부재는 타티아나 커플과의 대화에서 가능성으로 포착되고, 종국에는 초월의 계기가 된다. 시어도어의 육신이야말로 둘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 영혼의 감옥이 된 것이다. 이런 슬픈 역전.

Her, 처음 나왔을 때부터 화제가 많이 되었던 영화다. 당시 인터넷에는 결국 육신의 한계“ ”인간에게 잘 해라같은 류의 감상들이 넘쳤다. 글쎄, 너무 유치한 유기체-이기주의 아닌가. 그냥, 떠나간 사람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마음. 이 정도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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